윤석열의 12월 3일 비상계엄이 1주년이 되어 가는데요.
비상계엄
윤석열이 한 12월 3일 비상계엄은 내람 혐의로 재판중인데요.
윤석열은 비상계엄 하고 싹 다 정리하라고 지시했고, 국회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라고도 지시했다고 합니다.

2024년 12월 3일 밤, 대한민국 헌정사상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되며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습니다. 갑작스러운 선포부터 국회의 해제 의결까지, 긴박하게 돌아갔던 그날의 상황과 계엄 포고령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해 드립니다.
비상계엄 사건 개요
일시: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5분경 선포 ~ 12월 4일 새벽 4시 30분경 해제 (약 6시간 만에 종료)
주체: 윤석열 대통령 (특별담화 형식으로 발표)
계엄사령관: 박안수 육군참모총장
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.
국정 마비 주장: 야당(더불어민주당)의 잇따른 탄핵 소추 발의와 예산안 삭감 등으로 인해 행정부의 기능이 마비되었다고 주장.
체제 수호: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지키고, '종북 반국가 세력'을 척결하여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겠다고 발표.
목적: "망국의 원흉인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겠다"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.
계엄 포고령(제1호)의 핵심 내용

계엄 선포 직후 발표된 포고령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강력한 조치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.
정치 활동 금지: 국회, 지방의회, 정당 활동, 집회,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 금지.
언론 통제: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음.
의료진 복귀 명령: 파업 중이거나 이탈한 의료인(전공의 등)은 48시간 내 본업 복귀, 위반 시 처단.
기타: 파업·태업 금지, 영장 없는 체포·구금·압수수색 가능 등.
긴박했던 국회 상황과 해제 과정
계엄 선포 직후, 이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가진 국회로 시선이 쏠렸습니다.
국회 봉쇄 시도: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진입을 시도하고 출입을 통제했으나, 시민들과 보좌진들이 이를 막아서며 대치했습니다.
의원들의 집결: 여야 국회의원들은 담장을 넘거나 봉쇄를 뚫고 본회의장으로 집결했습니다.
해제 의결: 12월 4일 새벽 1시경,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**'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'**이 가결되었습니다.
최종 해제: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국회의 해제 요구를 수용해야 했으며, 결국 새벽 4시 27분경 생중계를 통해 계엄 해제를 선언했습니다.

비상계엄 사건의 의미와 파장
헌정사상 최단기 계엄: 1979년 이후 처음 선포된 계엄이었으나, 시민 의식과 국회의 신속한 대응으로 6시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.
민주주의의 회복력: 군의 진입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헌법적 절차에 따라 계엄을 무효화시킴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시스템이 작동함을 보여주었습니다.
후폭풍: 이 사건은 이후 탄핵 정국과 정치적 격랑의 결정적인 트리거(Trigger)가 되었습니다.
1년이 지났는데도 어떤 재판도 선고가 안됬습니다.

빨리 내란 수괴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.
'생활정보' 카테고리의 다른 글
| 일론 머스크 AI가 대체할 직업 (1) | 2025.11.30 |
|---|---|
| 매출 100억 이상 맛집 정리 (0) | 2025.11.26 |
| 공무원의 복종의무, 76년 만에 폐지 (0) | 2025.11.25 |
| 알리 익스프레스 관부가세 우리은행으로 납부하기 (0) | 2025.11.18 |
| 건강보험 자동이체 신청하기 (0) | 2025.11.12 |
티스토리 아이디로 댓글을 남기시려면
여기를 눌러주세요!